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이브러햄 링컨 (문단 편집) ==== 장남 로버트 링컨 (Robert Todd Lincoln) ==== 일단 첫째는 풀 네임 로버트 토드 링컨(1843~1926)으로, 유일하게 성인으로 자라 당시 기준으론 꽤 오래 산 83세까지 살았다. 남북전쟁 때는 육군에 입대하기도 했고, 심지어 그 유명한 [[로버트 리]] 장군의 항복을 목격한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는 변호사이자 사업가로도 성공을 거두고 전쟁장관과 주영대사를 역임하는 등 공직에서도 탄탄대로를 걸었으며, 결혼해서 자손도 남겼다.[* 자식으로는 제시 할런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 2세, 마미 링컨 아이샴을 두었다. 아들인 에이브러헴 링컨 2세는 어릴 적 요절했고, 장녀인 제시 할런 링컨은 워런 월리스 벡위스와 결혼해서 로버트 토드 링컨 벡위스를 낳았다. 로버트 토드 링컨 벡위스는 농부로 살았었고, 자식 없이 1985년 12월 24일에 8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서 링컨의 직계는 끊기고 말았다.] 남북전쟁 시기의 군인이 [[제1차 세계대전]]은 물론 [[워렌 하딩]]과 [[캘빈 쿨리지]]의 당선까지 보고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미국도 [[평균 수명]]이 짧은 편이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대통령 암살에 대한 [[음모론]]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맘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자 미국을 구원한 영웅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들이기 때문에 공화당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고, 대선 후보로도 거론된 거물이라 어느 미국 대통령도 쉽게 만날수 있는 위치였던 게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그는 미국 역사상 4건 있었던 대통령 암살 사건 중 '''3번'''이나 연관이 있는데, 아버지인 링컨이 죽음을 맞은 날엔 전날 하루종일 말을 탔다는 이유로 극장 관람을 불참하여 현장을 모면했으나, 그 외에도 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 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둘 다 그를 만났다가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버트 링컨은 그 뒤 대통령과 관련된 곳엔 (링컨 관련 행사 정도를 제외한다면)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일화는 2020년 1월 26일자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900회 방송분에 소개되었다. 하나 더 묘한 인연은,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시절에 열차에 깔릴 뻔 한 적이 있는데 그를 구한 것이 당대 유명한 배우인 에드윈 부스, 즉 얼마 뒤 아버지의 암살범이 되는 부스의 형이었다는 것이다. 사망 4년 전인 1922년, 링컨 기념관이 개관되자 [[미합중국 해병대]] [[장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개관식에 참석한 사진이 있다.[[https://www.reddit.com/r/interestingasfuck/comments/xxiptf/78yearold_robert_t_lincoln_the_son_of_abraham/|#]] 그는 하딩과 전직 대통령 겸 연방 대법원장인 [[윌리엄 태프트]] 옆에 섰다. ~~이후 하딩은 얼마 못가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자신만의 삶을 잘 살아낸 로버트 링컨은 앨링턴 국립묘지에 안장 되었으며, 그의 아내는 "위대한 부친과는 별도로 자신의 역사를 만든 남편은 태양 아래 양지 바른 곳에 묻혀져야 한다"라고 그를 추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